구명위원회 | 후원자 분들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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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김의 누나가 보내는 편지.

스티븐 김의 누나가 보내는 편지.

제 동생 스티븐이 겪고 있는 고통은 부당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웃고, 떠들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 마땅합니다. 항상 그랬듯, 본인의 일에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야 합니다. 동생은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 동생에게 꿈에도 상상치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0년 8월 27일, 미 법무부는 스티븐을 한 언론매체에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스티븐이 지금까지 평생을 일해왔고 성취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8월 27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 3월 28일, 기소되기 약 5개월 전, 미 연방수사국(FBI)은 스티븐에게 2009년 6월부터 그를 수사해왔다고 갑작스레 밝혔습니다. 그 이후, 3월 28일부터 8월 27일까지 미 법무부는 스티븐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하도록 회유했고, 사건을 적당히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스티븐은 갑작스레 닥친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미 정부에 합법적이고 논리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했고, 일관적으로 협조해왔습니다.

스티븐은 아무런 법적인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에 걸쳐 열 시간이 넘는 FBI 수사에 응했습니다. 그는 그가 수사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등의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FBI가 스티븐의 여권을 압수하려 했을 때, 그는 아무런 혐의도 없었고, 여권을 양도할 의무도 없었지만, FBI에 협조하고자 그의 여권을 순순히 내주었습니다. FBI가 수색영장도 없이 그의 집을 구석구석 뒤졌지만, 스티븐은 여전히 협조했습니다. 심지어 FBI가 그의 컴퓨터를 모두 압수해 갈 때도 그는 끝까지 협조했습니다. 스티븐은 이 같은 부당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백에 대한 확신과 수사에 협조하고자 하는 선의에서 순순히 수사에 응해왔습니다.

FBI는 스티븐을 하루 24시간 내내 감시했습니다. 그가 사무실이나 교회에 가거나, 변호사를 만나러 가거나, 물건을 사러 가거나, 심지어 짧은 외출을 하는 경우에도, FBI는 스티븐이 도주의 위험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의 뒤를 밟았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후, 스티븐은 극심한 충격과 고통, 두려움, 불확실성에서 매 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스티븐은 워싱턴에서 하던 일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대신, 그가 일해왔던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 (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가 있는 캘리포니아에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미 정부에 이 사실을 보고한 이후, 스티븐은 짐을 싸서 캘리포니아로 향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불안한 상황에서 스티븐은 캘리포니아의 한 작은 모텔방에 짐을 풀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8월 19일 목요일, 미국 정부가 기소를 결정한 직후, 스티븐은 24 시간 내에 워싱턴으로 복귀하라는 소환명령을 받았습니다. 스티븐은 순식간에 짐을 싸서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미 정부가 적용하고자 하는 중범죄와 장기징역이 아닌 다른 해결방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잠시, 검사측은 스티븐의 계속된 수사협조에도 불구하고, 10분 이내에 유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기소를 공개하고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시키겠다고 갑작스레 선언했습니다. 스티븐이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해보거나 생각을 해볼 최소한의 시간조차 주지 않은 것입니다.

스티븐은 물론 이러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유죄를 인정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법정에서 몇 시간 동안 공방이 있은 이후, FBI는 스티븐의 두 손을 등 뒤에서 수갑 채우고, 세 군데의 장소를 들러 그의 지문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장소를 옮기는 길에 그의 두 손에 수갑이 내내 채워졌는데, 어찌나 세게 채웠던지, 그의 손목이 수갑에 찢겨 나갈 정도였습니다.

스티븐이 마치 도주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듯, 검찰은 그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고 자동차에 가만히 앉아있기를 강요했습니다. 실상, 수사가 진행되는 몇 달 동안 그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일관되게 협조했으며, 정부에 그의 소재를 수시로 보고했고,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성실히 밝혀왔습니다. 수갑이 채워진 채,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 한 시간이면 족히 끝날 일이 거의 세 시간이나 걸려서야 끝났습니다.

스티븐은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충격 속에서도 검사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굴복하기를 택했다면, 그가 살아온 43년의 인생이 한마디 변호의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마치 컴퓨터 파일이 삭제되듯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 아는 스티븐은 부당한 압력에 굴복할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충격 속에서도, 스티븐은 그의 인생을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까지 항상 명예롭고 떳떳하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옳은 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스티븐은 그의 명예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과 금전적 부담이 크지만,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려 싸우고자 합니다. 감사하게도, 스티븐의 변호사는 유능하고 경험이 많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있습니다.

기소가 결정되기도 전에, 그는 평생을 모아둔 돈을 모두 써버려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사시던 집을 팔아 스티븐의 변호 비용을 마련하셨지만, 이조차 충분치 않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미 19개월 넘게 스티븐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만 최소한 네 명의 검사와 대여섯 명의 추가 인력을 확보하고 있고, 이미 몇 백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스티븐 개인 한 명이 무제한에 가까운 자원을 가진 미국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투입할 수 있는 만큼의 재원을 스티븐은 결코 확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스티븐은 여러분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스티븐과 예일대학교 동문인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장 김재천 교수가 한국 내 스티븐 구명위원회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본 웹사이트 개설을 포함하여 김재천 교수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보여준 지지는 우리 가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의 연락처는 본 웹사이트에서 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과 스티븐은 참담한 고통 속에서도 하루하루 살아갈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변해버렸습니다. 우리 가족은 때로는 강한 확신을 가졌다가도, 때로는 흔들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롭게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비통에 잠겼다가도, 대항해 싸울 기운을 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현 상황을 이겨낼 것이라는 긍정적이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여러분이 보여준 응원과 지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스티븐이 아침에 눈을 뜰 수 있게 하는 힘이 됩니다. 제 동생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T. S. 엘리엇(T. S. Eliot)이 “나의 끝에 나의 시작이 있다.(In my end is my beginning.)” 라고 했습니다. 동생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부디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